수필

사회지도층, 그리고 역린

yullee kim 2015. 3. 20. 19:56

 

사회지도층, 그리고 역린


 

 

중국고서 ‘한비자’에 ‘역린(逆麟)’이라는 말이 나온다. 역린이란 용의 턱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척 정도의 비늘들을 일컫는 말이다. 아시아권에서는 용(龍) 봉(鳳), 인(麟), 귀(龜)를 사령(四靈)이라 하여 권위와 존엄의 상징으로 신앙해 왔다. 그리고 용은 그 넷 중의 으뜸이다. 하지만 한비자에 따르면, 그 용도 사람이 하기에 따라서 능히 훈련이 가능하고 그 등을 타고 다닐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용의 등을 탈 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으니 이는 결코 용의 역린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역린을 건드리는 순간, 용은 고개를 돌려 등에 앉은 자를 물어 죽여 버리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사회지도층’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다. 독립적으로 활용되는 다른 어휘들과는 달리 ‘지도층’이란 이 말은 갑과 을이 존재한다는 분명한 가정 하에 통용되는 말이다. 즉 누군가는 지도를 하는 입장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해 안 되는 단어이고 불쾌한 단어이다. 이해 안 되는 것은 이 용어가 어떤 합리적인 발생근거를 가졌는지 불분명한 점이고, 불쾌한 것은 누구도 나를 지도해 달라 부탁하지 않았건만 각종 매체에서 툭하면 지도층이란 말을 운운한다는 것이다. 즉, 교육 잘 받고 윤리적으로 생활하는 대부분의 멀쩡한 국민들을 일방적으로 지도받아 마땅한 우민 취급을 하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단어를 몹시 싫어한다. 뿐만 아니라 이 단어가 지닌 폭력성에 알러지가 돋을 지경이다. 그 기원은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 일학년의 늦은 여름날이었다. 그날 점심시간, 우리 반은 눌러왔던 불만을 폭발시키고 말았다. 폭발기제는 부반장의 ‘상습컨닝’이었다. 웅성대는 소요를 시작으로 급기야 5교시 수업을 보이콧하기에 이르렀다. 수업을 하러 들어왔다 놀란 눈으로 교무실로 돌아가신 미술선생님, 그리고 그날의 종례시간, 그 날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종례에 들어온 담임은 컨닝의 증거를 대라고 했다. 담당교과가 체육이었던 그의 손에는 밀대자루가 들려 있었다. 그 시퍼런 서슬에 당당하게 대답할 열네 살 여자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담임은 시험 치는 대열로 자리배열을 다시해서 앉으라 했고, 컨닝 당사자 주변에 앉았던 아이들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운 뒤 증거를 대라고 했다. 아이들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바로 오른편에 앉았던 내 차례가 되었다. 어디서 용기가 났던지 나는 분명하게 대답을 했다. 부반장 Y가 손바닥에 번호를 적어서 물어왔다고, 그리고 그 문제는 빨래를 삶을 때 뚜껑을 닫는 이유를 물었던 가정시험문제였다고. 그때 나를 훑어 내리던 담임의 눈길, 사람의 얼굴에 박혀 있던 뱀의 눈길, 그 소름끼치는 째려봄. 그러나 그것으로 그친 나는 다행이었다. 그날 컨닝 증거를 대지 못했던 아이들과 소요에 앞장섰던 아이들은 매타작을 당했다.

그날, 반 아이들 전체가 울었다. 파랗게 젖어 드는 서러움을 참아 내던 나도 결국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부당한 야단을 맞는 것이 서러웠고, 매를 맞는 친구들의 모습이 서러웠다. 그러나 그 파랗고 물컹한 서러움의 덩이가 목젖을 넘어 나오도록 길을 터준 것은 그것들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고위세관원이었던 Y에 대한 담임의 일방적인 비호도 아니었다. 그것은 Y뒤에 앉았던 현자라는 친구가 담임으로부터 들었던 억지였다. 뒤에 앉은 너야말로 Y를 컨닝 한 게 분명하다는 어이없는 억지였고, 성적이 비슷하다는 것을 이유로 대던 어처구니없는 그 억지였다.

지옥 같던 종례가 파하고 야채장사의 딸이었던 현자와 산지기의 딸이었던 나는 어둠살이 내려앉는 길을 오래 걸었다. 버스로 예닐곱 개의 정류장이 되는 먼 길이었다. 그날 현자는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말했다.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서 앞으로는 이런 억울한 말을 듣지 않겠다고. 그러나 입술을 꼭꼭 깨물며 걷던 나는 엉뚱한 다짐을 두었다. 저 따위 선생의 지도는 받지 않겠다고.

이후, 현자는 정말 공부에 몰두했고 서울대를 졸업하고 당시로는 꿈같은 일인 프랑스로, 파리로 떠났다. 그에 반해, 나는 그 즈음 부터 일기를 썼다. 내 서러움과 억울함을 백지에 대고 낱낱이 고발하는 것에 몰두했다. 그러면서 ‘조용히 삐딱한’ 학생이 되어갔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내가 어릴 때 겪었던 불평등과 내가 당했던 불합리가 사회 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하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이제는 일정부분 이해를 하고, 불만이 생겨나기라도 하면 스스로에게 적당한 타협을 제시한다. 동석고금 사람 사는 세상 불의가 없을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이념이나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또 때로는 필요악도 존재해야 하며 세상의 정의는 시간이 지나야 정확히 판별되는 것이라고.

그런데 이렇게 기특하게 잘 참고 있다가도 ‘사회지도층’이란 말만 들리면 발칵 화가 돋는다. 휴지 한 조각 못 버리는 윤리의식으로 무장을 하고, 북적대는 모임에서 남의 뒷담화라도 하였다 치면 몇날며칠 양심 저림에 시달리는 사람을 두고 누가 무엇을 어떻게 지도하겠다는 것인지. 더 용납 못할 것은 이른바 지도층으로 불리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다. 병역기피, 세금탈루, 자산유출, 원정출산, 뇌물수수 그리고 성범죄에 상습적인 거짓말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피지도층보다 지도받을 일이 훨씬 많아 보인다. 그러니 선량한 국민이 그런 부도덕한 이들로부터 무슨 지도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 걸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집단우울증’ 내지는 ‘집단화병’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해, 물꽃이 되어버린 수백의 어린 생명들로 인해 우울의 깊이는 심연으로 떨어졌고 캘수록 드러나는 부패에 화병의 강도는 가파르게 치솟았다. 근자에는 명문대학 유명교수들의 상습 성추행 사건에다, 항공재벌 자녀들의 오만한 해프닝 이른바 ‘슈퍼갑질’이라 불리는 일련을 사태까지 목도하고 있다. 정말이지 허파에서 연기가 치솟고, 염통이 파편이 될 지경이다.

그런데 의식 없는 일부 매체와 일부 기자들은 이런 상황 하에서도 사회지도층이란 용어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모르겠다. 그들은 정말 누군가의 지도 아래 기사를 써 왔는지 모르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럴 의사, 부도덕한 그들에게 지도를 받을 의사가 전혀 없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자신들의 말이 국민들의 마지막 자존심, 즉 역린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을.

물론 역린이라는 말에서 용은 왕을 지칭하며, 그 존엄을 훼손하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 원래의 의미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주인은 왕이 아닌 백성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사회적 질서를 약속하고 순하게 그 길을 간다. 등이 뻐근하도록 짐을 지고도 불평 없이 제 길을 간다. 그러나 그들의 목덜미에도 역린은 돋아 있다. 등에 탄 무엇을 물어죽일 힘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역사를 통해서 배워왔고, 세상 이곳저곳에서 보아왔다. 그러니 말을 할 자격을 얻었다하여 함부로 말 할 것이 아니며, 적합하지 않는 용어는 퇴출됨이 마땅하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이 무례한 단어를 폐기하면 대체할 용어가 없다 하고. 그러나 나름으로는 ‘상위층’이란 단어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상위층이란 말은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단어가 아니다. 그저 자신이 뭔가 더 가졌거나, 상대에 비해 위치가 높다는 단순한 의미이다. 이를 통해 타인에게 힘을 행사하겠다는 강압적인 뉘앙스는 없는 말이다.

아무리 평생교육의 시대라 하지만 국민 모두가 자발적인 학생은 아니다. 게다가 배울 바 없는 이들에게 덮어놓고 지도받겠다는 이도 짐작 건데 아마 없을 것이다. 아울러 삐딱한 나는 더더욱 그럴 생각이 없다.

그러고 보니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열네 살에 시작한 나의 고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열네 살에 시작한 나의 삐딱함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모양이다. 옛말 틀린 것 없는 세상이다.


 

2015 에세이문학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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