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배추
도로변 화단에 꽃배추가 추레하게 늘어져 있다. 납작하게 땅에 붙어있어야 예쁘게 보이는 화초인데 꽃대가 쑥 올라와 있다. 제 한 철을 다 산 것이다. 늙은 닭의 털 빠진 목처럼 더덕더덕한 꽃대가 땅에서 한 뼘이나 자라 올랐다. 겨우내 저 꽃배추들은 도톰하고 빳빳한 잎들이 손가락 하나 안 들어갈 듯 빼곡히 차 있었다. 이파리 끝에 짧은 레이스를 살짝 감고 하늘을 향해 환호하고 있었다.
지금은 자라 오른 꽃대를 돌아가며 종이장처럼 얇은 잎들이 얼기설기 달려 있다. 바람난 마누라가 팽개치고 간 헌살간 같다. 그나마 머잖아 흙이 되어 돌아갈 땅을 미리 내려다보기라도 하는 것일까 색기 빠진 잎들이 아래로 축 쳐져 있다. 겨울이 끝나간다. 오로지 일만하고 지내온 겨울이다.
늦가을이나 초겨울이면 도로변의 화초들이 얼굴을 바꾼다. 흰빛과 검자주빛의 빠닥빠닥한 잎을 가진 꽃배추들이 싱싱하게 등장한다. 이들은 잎모란이라는 다른 이름처럼 과연 크고 풍성한 자태를 보여준다. 어찌 보면 꽃보다 더 어여쁘기도 하다. 무엇보다 영하의 기온을 참아내는 체력과 삭풍을 이겨내는 용기가 대견한, 아주 기특한 식물이다. 이 기특한 식물은 나의 생활주기를 알려주는 자연시계이기도 하다. 꽃배추의 등장과 함께 나의 농번기가 시작되고 쇠락함에 따라 농한기가 시작되는 이유에서다.
겨울, 살인적인 업무량이 쏟아진다. 밤도 없고 낮도 없고 집도 없고 가족도 없다. 그저 하루 하루 책상 위에 쌓이는 적들을 물리치는 것에만 모든 신경과 체력을 쏟아 붓는다. 언제인가 시어머니께서 하시던 말이 생각난다. 평생 농부로 살아온 어머니여서 농사일을 일상의 익숙함으로 여기실 줄 알았는데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봄날, 땅김이 아른 아른 흔들리는 논을 보면 덜컥 겁이 난다 하셨다. 이제 저 논에 물을 들이고 맨발로 들어가면 언제 나올꼬, 그 많은 일을 어찌 다 할꼬. 겁이 나고 도망치고 싶다 하셨다. 하지만 웃으셨다. 그렇잖아도 쪼그라진 얼굴에 더 많은 주름을 잡고 웃으시며 뒷말을 이었다. ‘그래도 시작하면 다 하는기라, 다 해내는기라 시작이 무서바서 그렇지……’
시어머니의 그 말뜻을 나도 이제는 안다. 말의 뜻만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심정을 알고, 느낌을 알고 그 두려움을 안다. 꽃배추가 등장하던 지난 겨울 초입 내 마음이 그러했으니까. 무논에 발을 들이밀면 그래도 한 해 농사를 다 지어내는 것처럼 나 역시 긴 겨울 내내 삭풍에 넘어지지 않으려, 영하의 기온에 얼지 않으려 꽃배추처럼 빠닥빠닥 힘을 썼으니까. 책상머리에 사진들도 붙여놓았다. 마음에 닿는 시들, 김필연 시인의 ‘솟대’와 안도현 시인의 ‘겨울강가에서’를 모니터 주변에 붙여놓고 하얀 눈이 쌓여있는 겨울강가로 산책을 나가기도 하고 나무기러기 날개를 바라보며 간절한 내 소망이 하늘에 닿기를 기구하기도 했다. 집에 가지 못하는 날도 허다했다. 그런 밤이면 나를 안스러워 하는 마른잎들이 회오리삭풍을 빌어 사무실 창 앞까지 화르륵 날아오르기도 했고 겨울비가 따닥따닥 유리창을 때리며 들어오고 싶어도 했다.
겨울의 강을 쉬이 건너려 나름 그렇게 애를 썼음에도 잎모란이 축 쳐진 지금, 마음이 명주고름처럼 주르르 흘러내린다. 몸은 지탱할 뼈라고는 성냥개비 하나 만큼도 없어 낙지처럼 바닥에 촤악 깔려버린다. 짧은 잠을 청하노라 자리에 누우면 이번에는 살과 피부와 근육은 없고 뼈만 있는 듯하다. 그저 머리뼈부터 발가락뼈까지가 차례대로 죽 나열되어 놓여 진 것이다. 무언가가 내 속에 든 것을 올올히, 남김없이 다 빼내어 가 버린 탓이다.
겨우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틈틈이 아끼듯이 읽었다. 가슴에 확 닿는 구절이 있었다. ‘날씨가 추워서 그대를 찾아왔노라’ 겨우내 그 글귀가 마음에 남아 있더니 겨울이 끝나갈 무렵 슬며시 운이 바뀐다. ‘심신이 지쳐서 그대를 찾아 왔노라’ 하고…… 정말이지 이럴 때는 그의 어깨에 몸을 기대고 ‘나 지쳤어요.’ 라고 말하고 푹 무너져 내려도 괜찮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바램대로 그런 누군가가 있어 차 한 잔이나 술 한 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하자. 대화는 뻔하게 이어진다. 그는 말할 것이다. 혼자 힘들어 하지 말고 가족에게 말하라고,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 위로받으라고. 곧바로 내가 대답을 한다. 모르는 소리를 한다. 요즘 사람은 누구나 힘들고 지쳐있으며 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니, 그에게 마누라의 탈진무게까지 얹어서 정말 푹 주저앉게 만들 수는 없다고. 긴 한숨을 내 쉬며 그는 또 말할 것이다. 의사도 교사도 공무원도 못 되는 주제에 젊은 감각이 필요한 그 일을 아직까지 하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라, 이제 이 나이에 다른 일을 찾으면 식당밖에 없다. 그나마도 서빙은 이미 안 되고 주방 뒤편에서 설거지나 해야 하니 할 수 있는 한 참고 열심히 하라고. 안다 다 안다. 그래도 나는 또 지쳤다 말할 것이고, 그는 이런 나를 향하여 그만두고 살림이나 하라 그렇다고 당장 먹고 살 일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 않느냐고 가슴을 치며 답답해 할 것이다. 아니면 벌컥 화를 낼 지도 모르는 일이고.
안다 나도 안다. 왜 모르겠는가, 나 역시 나와 같은 이를 앞에 두면 분명히 같은 답을 할 것이니 말이다. 그래도 나의 이런 하소연에 긴 한숨을 쉬어 줄 을숙도 갈대밭 같은 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답답한 내 투정에 벌컥 화를 내고 돌아서면 까맣게 잊어버릴 성질 급한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겨울이 돌아오고 가로변에 꽃배추가 식재될 때 나이값 못하는 투정쟁이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꽃배추가 나오고 있어…… 나 어떡하지?’ 하고.
이천 십 삼년 이른 봄에 쓰다. (에세이문학 봄호 수록작)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렁다리 (0) | 2015.03.20 |
---|---|
동해의 형제섬 (0) | 2015.03.05 |
엄마, 나 이빨 뺐어 (0) | 2014.09.06 |
그녀, 외로운가 보다 (0) | 2014.04.13 |
꽃게백정 (0) | 2014.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