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경부선을 내려오며

yullee kim 2019. 3. 9. 22:57

경부선을 내려오며



늦겨울, 막바지 추위가 남은 기운을 다 소진하고 가려한다. 춥다. 서울은 겹겹이 옷을 입고 있어도 추웠다. 늦은 오후, 기차를 타고 내려간다.

차창 밖. 침잠하는 해, 겨울나무 뒤로 파편이 되어 있는 붉은 황토빛 하늘, 잎새도 없는 겨울나무 하나, 둘, 셋… 낮으막한 산능선에 고즈넉이 서 있다. 바람도 없는데 오소소 떤다. 하늘이 자르르 흔들린다. 하늘조각들이 잘랑잘랑 움직인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창밖은 투명도50의 어둠이다. 투명한 어둠이다. 맑은 검은빛이다. 그 투명한 어둠 속으로 겨울이, 늦겨울이 한 켜씩 묻히고 있다. 쓸쓸한 계절이다. 얼어붙은 저수지가 보인다. 저수지는 희뿌윰한 얼음에 갇혀있다. 얼음에 갇힌 저수지를 내려다보는 나무, 나무의 발등에 희끗희끗 덮여있는 잔설. 저 나무…… 발 시리겠다.

딸을, 작은 아이를 추운 서울에 두고 내려간다. 나의 일로 상경하였다 하여 어미인 나는 내 용무에만 바빴다. 한 시간 거리에 아이를 두고도 얼굴도 못 보고 목소리만 듣고 내려간다. 밥 한 끼 같이 먹을 상황도 못되고 그저 얼굴이나 볼 뿐인데 빡빡한 서로의 스케줄을 움직여 스치듯 한번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여 서로 양해를 하였다. 하지만 자식이 있는 근처까지 왔다가 그냥 내려가는 마음이, 이토록 추운 날씨에 그저 내려가는 어미 마음은 얼음에 갇힌 저수지처럼 시리다.

저수지를 굳혀버린 얼음, 불투명도70의 흰빛이다. 그 위를, 그 차가움 위를 투명도30의 어둠이 덮이고 있다. 불투명한 흰빛들이 어둠의 밑바닥에서 제 맨살을, 제 두터운 살집을 자랑하며 차갑게 웃는다. 검은 빛이라고 어두운 것이 아니다. 흰빛이라고 밝은 것은 아니다. 투명한 어둠도 있고 투과할 수 없는 하얌도 있다.

기차는 질주한다. 쾌속열차라 바람처럼 달린다. 하지만 내려앉는 어둠을 이겨낼 수는 없다. 불투명도100의 세상이 되었다. 하늘을 갈라놓던 나무의 수고도 끝이 났다. 보이는 것은 희끗한 밤눈뿐이다. 산비탈과 논두렁에 질기게 앉아있는 눈얼음뿐이다. 비로소 온전한 흰 것이 보인다. 어둠의 도움을 받고야 비로소 밝은 것이 제 모양을 입는다.

따스한 열차 안, 하지만 한 겹 검은 유리창을 넘어가면 영하의 세상이다. 그러나 아무도 춥다 말하지 않는다. 하늘을 갈라놓던 나무도, 파편이 되어 버린 하늘도, 등에 눈을 감고 있는 논두렁도 끈기 있게 추위를 견디고 있다. 얼음에 잠긴 저수지도 춥다하지 않는다. 깊은 밤 추위의 창끝이 등을 내려찍을 때에야 비로소 쩡! 하고 짧은 신음을 낼 것이다. 어쩌면 저렇게 까지 참을 수 있을까. 따뜻한 검은 유리 안의 나는 추위를 견뎌내는 얼음저수지에 마음이 아리다.

작은아이는 어릴 적 분리불안 증세를 보였다. 잠시도 어미를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늘 나의 등에 붙어있거나 멱살잡이를 하고 있었다. 목욕을 시키려 욕조에 담구어 놓고 미처 못 챙긴 수건이라도 가져올 양이면 이십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아이는 파랗게 넘어갔다. 주먹을 꼭 쥐고 달달 떨며 절박하게 울곤 했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스무 살도 못 된 때부터 외지에서 혼자 산다. 많이 크지 못한 아이, 제 어미만큼의 키도 못 채운 아이, 얼굴이 주먹만 하고 발도 한 뼘 밖에 안 되는 아이. 나는 놀리곤 했다. 손이 꼭 원숭이 손만 하구나. 하지만 아이는 원숭이 손만 한 그 작은 손으로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했다. 그러나 어미인 나는 이것도 못하게 하고 저것도 못하게 하며 내가 원하는 그것만을 강요했다. 아이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어미의 말을 들어 주었고 힘든 사춘기를 참아냈다. 그런 아이를, 또 이제는 그 추운 곳에 혼자 남겨두고 얼굴 한번 보지 않고 내려온다. 나는 냉정한 어미이다.

기차는 쉬지 않고 달린다. 어둠은 애를 쓰지도 않는다. 가만히 있어도 모든 것을 지배한다. 이제는 얼음도 눈도 없다. 넘겨보는 유리창에는 내 얼굴만 보인다. 저 얼굴, 저 검은 실루엣, 아이를 닦달하던 검은 마녀.

마녀의 무릎에서 달달달 떨리는 전화기, 전화기 너머에서 아이는 말한다. 서울이 춥다 하지 않는다. 추워서 상쾌하다 한다. 이제는 식은땀을 흘리지 않아서 좋다 한다. 오히려, 냉정한 제 어미가 저녁을 챙겨 먹었는지 걱정한다. 입이 짧은 어미가 외지앓이를 하느라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을 짐작하고는 커피라도 우유가 든 것으로 마시라 한다. 잘랑거리는 목소리로, 호호거리며. 지금, 혼자 지내는 제 작은 집으로 돌아간다 한다. 한 뼘 밖에 안 되는 작은 발이 시리지나 않을까. 그래도 멋을 내느라 스타킹에 구두를 신었을 터인데…… 처녀가 되었구나. 이제, 벌써. 분리불안을 앓던 그 작은 아기가.

어둠 속에서 얼음처럼 하얗게 견디며, 제 모양을 잃지 않던 아이는 원숭이 손만 한 작은 손으로 추운 서울을 혼자 헤쳐 나가고 있다. 하지만 아이는 또 견뎌야 할 것이다. 얼음저수지처럼…… 춥고 어두운 겨울밤을 수없이 견뎌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저수지의 얼음처럼 추위 속에서 살이 두터워지고, 추위를 먹고 몸집을 키워 나갈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는, 추위의 창이 등을 내려찍기도 하리라. 쩡! 하고 등이 깨어지기도 하리라. 따뜻한 남쪽에 있는 어미가 추위의 창에 아이 등이 깨어지는 쩡!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따뜻함이 모든 것을 덮어 버린 세계에서, 호수도 얼지 않고 강물도 얼지 않는 곳에서.

돌아보면 달려 내려온 것은 거리만이 아니다. 시간도 달려 왔다. 출발할 그즈음은 나도 추웠다. 얼음처럼 견딘 시간들이 있었고, 머리 위의 하늘이 파편처럼 부서지던 날이 있었고, 추위의 창에 등이 깨어지던 밤도 여러 날이었다. 그래도 나는, 불투명도100의 어둠 속에서 하얀 내 잔등을 세상 속에 내 놓았었다. 지나쳐온 얼음 저수지처럼, 지금의 내 작은 아이처럼.

여전히 달리는 열차 안, 추운 곳에 홀로 두고 온 아이의 잔등이 자꾸 시리다. 되올라가고 싶다. 밥 한 끼 같이 못 먹더라도 얼굴이라도 보고 올 걸 그랬다. 이 밤, 추위의 창이 내려찍을 등을 찾아 아이 곁을 어슬렁거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릴 때처럼 등이라도 빌려주고 올 걸 그랬다.

열차는 레일을 타고 어둠 속을 질주하고 있다. 얼음처럼 시리는 내 마음 따위는 아랑곳도 없이…….


수필과 비평 2017년 1월호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꽃이 피었다  (0) 2019.04.20
상계리 그 집 두번째 이야기  (0) 2019.03.09
봄날, 우도에서  (0) 2018.11.09
제 탓이 아닙니다.  (0) 2018.11.09
바람악보  (0) 2017.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