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우주
숨겨진 우주
- Lasa Randall -
- 질문의 시작
초등학교 자연 시간, 모든 물질은 분자로 만들어졌다는 선생님 말에 손을 들고 질문한다. “그러면 분자라는 건 뭐로 만들어졌나요?” “그건 몰라도 된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나는 분자에 머물러 있다. 중학교 물리 시간, “분자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면 원자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나요?” “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핵과 전자는 무엇인가요?”, “그런 건 시험에 안 나온다.” 나는 여전히 전자에 멈추어 있다. 내 질문 탓에 진도를 내지 못한다 말하던 선생님은 나를 내버려 둔다.
『숨겨진 우주』라는 책을 만났다. 이론물리학자 리사 랜들이 쓴 물리학 책이다. 솔직히… 내가 이런 책을 본다는 자체가 어이없는 일이고 분수없는 짓이다.
너무나 부러운 그녀, ‘리사 랜들’
리사 랜들은 ‘물리학의 여신’이라 불린다. 여신이라는 이 한마디로 그녀가 현대 물리학계에서의 차지하는 위상이 어떠한지 알고도 남는다. 외모적으로도 상당히 아름답다. 숱 많은 금발에 큰 키, 늘씬한 체형에 이목구비는 또 얼마나 또렷한지,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요새 말로 연예인 비주얼이다. 그러나 그 무엇 무엇에 앞서 그녀는 똑똑하다. 그것도 아주 무지막지할 정도로!
리사 랜들은 1962년 뉴욕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각종 엘리트 코스를 ‘아주 당연하게’ 최고의 성적으로 통과했다. ‘랜들-선드럼 표준모형’ ‘여분차원 연구’ 등의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세계 이론물리학계를 주도하는 대표적인 학자로 자리매김했으며 현재 1)하버드 종신교수이기도 하다.
나는, 리사 랜들이 부럽고 고맙다. 내가 밥솥운전이나 하고 있을 때, 같은 세대인 그녀는 우주의 비밀과 세상의 기원에 다가서고 있었다는 게 부럽고, 내 오래된 질문에 이렇게나 세밀하게 답해 주어 고맙기 그지없다. 나에게 리사 랜들은 뉴턴이나 아인슈타인보다 더 대단하고 더 경이로운 존재다.
비밀의 문을 열며
서문에서 그녀는 말한다.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풀고 우리가 사는 세계의 놀라운 모습을 예측하는 일이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는 일인지” 라고. 그녀의 두근거림, 세상의 기원과 우주의 비밀에 다가서는 그녀의 걸음은 개인의 성취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여는 문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고 날 수 있을지.『Warped Passages』라는 책을 내 책상에 올려 준 것만 보아도 말이다.
책은 1장 차원이란 무엇인가, 2장 20세기 물리학 혁명, 3장 기본입자들의 물리학, 4장 끈 이론과 막, 5장 여분차원의 물리학, 6장 차원여행을 마치며 이렇게 2)여섯 개의 주제로 나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기본입자를 설명하는 3장과 여분차원을 다루는 5장에 관심이 갔다. 하지만, 아주 기초적인 물리 상식밖에 없는 나는 그녀의 설명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도 색색의 포스트잇을 줄줄이 붙여가며 읽었다. 이해 안 되는 부분은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하지만 한계는 여전했고, 그 한계를 느끼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아마 근원적인 궁금증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건 왜 이렇고 저건 왜 저러며 그건 또 왜 그런가. 나는 늘 궁금했고 늘 알고 싶었다. 그리고 세상 사람 모두가 알고자 하는 것들, ‘나는 무엇인지 최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지 혹 존재 자체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없어지는지, 분해되는 걸까, 아니면 완벽한 다른 무엇이 되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정말 무(無)가 되는 건지, 그렇다면 그 무는 어떤 것이고 어디에 존재하나’ 하는…. 모두가 궁금해하는 그것이 궁금했고, 다른 이들이 알고 싶어 하는 만큼 나도 알고 싶었다.
한동안은 종교가 해결해 줄 것이라 여겼다. 나와 세상을 누군가가 만들었고, 열심히 살면 신이 허락하는 세계로 옮겨지거나 아니면 다른 무엇의 몸을 입거나 기타 등등……. 이 얼마나 골 시원한 간단한 답인가. 하지만 과연 그게 정답일까.
- 3장 기본입자들의 물리학
원자론은 고대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에 의해 처음 등장했다. 이때 원자는 철학적 개념으로 존재했다. 이를 이론과 실험으로 정립한 이는 19세기 화학자 돌턴이다. 수소분자 2개와 산소분자 1개가 만나 물 분자 2개를 만든다. 단순한 수식으로 생각하면 물 분자 3개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2개밖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 속의 더 작은 무엇들의 헤쳐 모여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고, 이를 통해 원자를 증명했다.
원자는 전자와 원자핵으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핵 안에는 양성자와 중성자 그리고 강력한 힘으로 이 둘을 잡아매는 중간자가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 역시 이를 구성하는 기본입자들이 아주 많고, 이들은 무게나 성질에 따라 여러 갈래로 분류된다. 이 입자들은 분명 질량과 움직임이 있지만 무한한 것은 아니다. 아주아주 짧은,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만 존재한다.
리사 랜들은 그녀의 책 236페이지에서 기본입자의 크기를 알려준다. 중성자, 그러니까 원자핵을 구성하는 그 중성자를 가로 2m, 세로 1m, 높이 0.5m 크기의 매트리스라 생각하면 그 속에 든 기본입자들은 완두콩 한 알만하단다. 세상에….
그런데 또 이 입자들은 점이 아니라 3)끈이란다. 그리고 그 끈들은 고리를 이루고 있다 하니 도대체 이곳은 얼마나 작은 것들의 세계이며 학자들은 이 작은 세계를 어떻게 알아채는 것일까. 하지만 그 카테고리 안에서 새로운 입자들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대칭성 수식이 맞게 떨어지지 않는다며 4)숨어 있는 입자를 찾아내는 것에 평생을 걸고 있는 물리학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렇다면 이런 극미시세계를 왜 들여다보는 것일까. 이 책 전체를 통해 리사 랜들은 대답한다. “가장 작은 것을 통해 가장 큰 것을 이해한다.”
- 5장 여분차원의 물리학
지구는 시속 1,660km로 자전하며 시속 108,000km의 속도로 공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어마무시한 속도의 운행체인 지구에서 한 사람도 우주로 튀어 나가지 않는다. 이것이 중력 때문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런데 클립 하나를 두고 보자. 지구가 온 힘을 다해 이 클립을 당기고 있어도 작은 자석 하나만 있으면 클립을 들어 올릴 수 있다. 그렇다면 사실 중력의 크기는 자석 하나의 힘만큼도 안 된다는 말이니 이 얼마나 앞뒤 안 맞는 현상인가. 물리학자들은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현재로서는 이 난제를 해결할 가장 훌륭한 아이디어가 ‘차원’이라 한다. 우리는 3차원 공간, 혹은 4차원 시공간에 산다. 그런데 학자들은 그 이상의 또 다른 5)차원이 존재하며 이를 ‘여분차원’이라 정의했다. 여분차원은 우리가 감지할 수 없을 만큼 작게 압축되었거나,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크기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차원의 단계를 높여가면 작은 것과 큰 것의 구별은 의미가 없고, 이를 통해 우주의 실체에 다가설 수 있다 한다.
개미가 먹이를 보고 기어 올 때 사람이 그 먹이를 들어 올리면, 개미는 먹이의 사라짐을 이해할 수 없다. 바닥을 기어가는 개미는 2차원 평면세상에 살고, 먹이를 들어 올리는 인간은 3차원 공간세상에 살기 때문이다. 즉 먹이는 차원이동을 한 것이다. 리사 랜들은 중력 역시 이처럼 차원의 문제로 접근하며 책 487페이지에 “다른 모든 힘과 달리 중력은 결코 하나의 막(차원)에 속박되지 않는다”라고 썼다.
그렇다면 중력과 우주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여분차원은 어떻게 감추어져 있고 또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여분차원은 3차원에 지문을 남긴다. 그 지문은 ‘칼루자-클라인 입자’라는 흔적이다.(522p) 결국, 입자로 돌아오는 것이다.
- 모두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
모든 것은 질량을 가지며 어떻게 분해되어도 자신의 질량 혹은 값을 가진다고 배웠다. 지구에 한해서 살펴본다. 지구가 45억 살을 먹도록 무수히 많은 동식물이 왔다 갔고, 무수히 많은 사람이 왔다 갔다. 그 질량들은 어디에 있는가. 지구에 계속 쌓였다면 지구가 지금처럼 멀쩡히 존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어딘가에, 어떤 형태 혹 어떤 질량으로라도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종교에서는 그곳을 천국 혹은 극락이라 명명할 수 있고, 물리학에서는 또 다른 차원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몸도 분자, 원자를 거쳐 입자로 존재한다. 입자는 찰나보다 짧은 시간 속에 생기고 사라진다. 그래서 나도 쉴 새 없이 사라지고 쉴 새 없이 생겨난다. 사라진 나는, 새로 생겨날 나는 어떤 차원에 있을까. 리사 랜들이라는 동년배의 아름다운 여신을 통해 나는 이 궁극의 비밀에 접근한다.
‘사라진다는 것’은…… 내 눈앞에서만 보이지 않는 ‘그것’이 아닐까 짐작하며.
1)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
2) 하지만 각각 다른 내용이 아닌, 하나의 주제를 설명하기 위한 단계로 보는 게 더 적합하다.
3) 초끈이론
4) 반드시 있을 것이라 추론했던 힉스입자가 2012년 발견되었다.
5) 학자들은 9~10차원까지 추론하고, 이를 이해하는 이들도 있다 한다.
2022 에세이문학 여름호 '책 속에 삶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