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공사
드디어, 날이 왔다. 공사를 하는 날이 왔다. 긴장된 마음으로 공구소리 요란한 공사장에 들어선다. 몇 개의 방에서 쉴 새 없이 새어 나오는 것들. 웅웅 울리는 드릴소리, 아릿한 노린내…… 그리고 두려움. 이윽고, 문 하나가 열린다. 강한 조도의 빛이 폭발하듯 새어나온다. 문 안으로 발을 옮긴다. 발이 떨린다. 몸도 떨린다. 체포되어 가는 범인처럼 마음까지 떨린다.
이번 공사… 두렵긴 하지만 꼭 하고 싶은 공사였다. 하지만 하고 싶다하여 쉽게 해 버릴 그런 문제는 결코 아니었다. 하여, 사전준비에 최선을 다했다. 상황을 파악하고 정보를 수집했으며, 자금내역을 확인하고 견적도 받아 보았다. 공사의 타당성 검토를 위해 다양한 변수와 갖가지 상수도 넣어 보았다. 하지만 답은 언제나 같았다. 즉 ‘이 공사는,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열 번 낫다. 더하여, 공사를 하되 제대로 검증된 업체에 의뢰해야 하고 시공 또한 공신력 있는 기술자에게 맡겨야 한다.’ 하는 것으로.
검증된 업체에 공신력 있는 기술자라……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으로 난립하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이 업종의 그 많은 업체들 중에서 어떻게 그런 곳을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어디에나 길은 있는 법. 때맞추어 유능한 자문이 등장했다. 나의 자문 그녀, 방송강의를 하는 그녀는 다양한 직간접의 경험들이 있는데다 정보력 또한 막강했다. 게다가 나의 이질녀이기까지 하니 이만하면 충분히 신뢰할 만하지 않은가. 그런 그녀, 내가 신뢰해마지 않는 나의 자문은 통합적인 검토를 한 뒤 한 업체를 낙점했다. 더불어 시공기술자의 신상명세서도 척하니 들이민다. 거기에 쇄기를 박는 그녀의 한마디 ‘미뤄서 좋은 건 아무것도 없다!’ 마음 굳힌 나는 행동에 들어간다. 일주일 간격으로 업체를 방문했고 그럴 때마다 모 유행가 가수의 노랫말처럼 ‘압구정동역 4번 출구’를 통과했다.
지하철 압구정동역 4번 출구, 그곳은 개찰구부터 지상으로 나오는 입구까지 온통 예쁜 여자들로 가득 차 있다. 그녀들은 나와 눈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리고 유혹한다. 머뭇대던 내가 눈길을 주자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나처럼 만들어 줄까, 너에게만 말하는 것이지만 사실 예전의 나는 참 못생긴 여자였어. 사각턱이었고 광대가 솟았으며 눈은 작았지. 게다가 얼굴은 징처럼 커서 서글프기 짝이 없었단다. 그뿐인 줄 아니, 빈대코에 얄팍한 입술이었으니 섹시하다는 말하고도 거리가 멀었지. 환골탈태 했다는 그녀들의 말, 그 자신 있는 경험담에 사르라락 귀가 녹는다. 종이비누처럼 매끄럽게 녹는다. 옆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때를 놓치지 않고 코러스를 넣는다. 후박나무꽃처럼 뽀얀 얼굴의 여자다. 그 사근사근한 음색, 말캉한 멜로디. 사이렌의 노래처럼 마음을 난파시킨다. 눈, 코, 입은 골조공사일 뿐이야. 중요한 건 마감이야, 무엇보다 마감을 잘해야지. 암, 피부가 고와야지. 나처럼 만들어 줄테니 와 보렴. 와 보렴. 어서 와 보렴.
빛이 작렬하는 방. 그 한 가운데 좁다란 침대가 놓여있고, 천정에는 해바라기처럼 둥글둥글한 전등이 한 무더기 달려 있다. 한 발 더, 들어선다. 침대 위에 몸을… 뉘인다.
이 문을 여는 것, 결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나는 이 문을 여는 여자들을 성토해 온 성토자였다. 그녀들의 행위를 두고 자연스러움을 수긍하지 못하는 얄팍한 여자들의 뻔한 허영이요. 조물주의 창조를 획일화 시키는 어리석은 하극상에 불과하다 냉정하고 단호한 정의를 내렸었다. 그러나 말이다. 사람은 관에 들어가기 전 까지는 남의 말 할 것이 못된다. 입장 바꿔보지 않으면 어떤 무엇으로도 완벽한 이해는 어렵다. 나도 결국 이 문을 들어서고 있지 않는가.
이율배반적인 나를 합리화하기 위해 갖가지 이유를 찾는다. 여자다움의 끝자락에 와 있다는 절박함, 인생 한번 뿐인데 하는 배짱, 이 공사로 해를 입는 타인이 있는가 하는 윤리적 검토,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사회현실. 나는 이 모든 것을 한 그릇에 몰아 담는다. 이 중 타당성이 있는 것은 뒤의 두 항목이다. 이 타당성 둘에, 욕심 둘을 뭉쳐버린다. 차지게, 매끄럽게, 절묘하게…….
사람들은 다양한 직업에 종사한다. 그 직업들 중에는 나이 들어감이 문제 되지 않는 곳도 있고 오히려 덕이 되는 직종도 있다. 교사나 공무원쯤 되면 나이는 잊어도 좋다. 의사나 학자들은 흰머리가 그들의 훈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일은 다르다. 나는 지면디자이너이다. 새롭고 참신한 것이 추앙받는 세계이고 나이에 예민한 곳이다. 일을 처음 시작할 즈음에는 고객 대부분의 연배가 나보다 높았다. 거침없이 일을 했다. 한동안의 시간들도 괜찮았다. 경력이 쌓이고 자신만만해지는 시간들이었으니까.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내가 고객들의 연배를 넘어서기 시작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나이 많은 작업자가 불편하지 않을까. 내 의뢰인은 내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흡족해 할까.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바짝바짝 조바심이 났고, 철렁철렁 위기감이 들었다. 그 탓으로 나는, 멀쩡한 디자인을 해 놓았음에도 곧잘 심리적 위축에 시달렸고, 고객의 반응을 감지하려 신경의 더듬이를 뻗을 수 있는데 까지 뻗어내곤 했다. 가슴에 설렁바람이 지나가고 쇠구들에 앉은 것처럼 마음이 시려왔다.
돌아보면 잘 버텨오긴 했다. 통통한 볼살과 오밀조밀한 눈 코 입을 타고 난 덕분이다. 젊을 때는 입체적이지 못한 내 얼굴이 적잖이 불만이었으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젊은 시절의 그 불만거리가 지금와서는 숨겨놓은 비상금 노릇을 한다. 아주 제 몫을 톡톡히 한다. 여기다 후방지원군으로 나선 화장품의 공덕 또한 빼 먹을 수 없다. 오종종한 얼굴과 화장품, 이 둘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정말이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속 나이는 어찌되든 겉모양은 한참의 세월을 거슬러서 적잖은 시간을 벌어 주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라는. 언제부터인가 거울 너머에서 발견되는 나이, 에누리 없는 내 나이. 애써 외면한다. 피곤해서 그럴 거야. 요즘 날씨가 좀 건조해야지. 아마 며칠을 두통에 시달렸지…. 주문을 외워본다. 한 이틀 푹 자면 탱탱해질 거야. 마스크팩을 흠씬 하면 촉촉해 질 거야.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세월 이기는 장사는 없다. 세상 어디에도 없다. 어느 날인가 결국 마주치고 말았다. 원수의 거울 속에, ‘늙을 老’가 박힌 내 얼굴이 담겨있지 않은가. 그것도 고스란히 그리고 선명하게. 선명하다는 말은 젊음에나 어울리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에나, 그 선명이 늙음에도 이렇듯 적합할 수 있다니. 그동안 버티던 내가 그 선명한 늙음을 확인하곤 드디어… 백기를 든다. 아프게 무너진다. 오랑캐 같은 저 老軍, 용기백배하여 급속도로 세를 불려 나간다. 눈가에 진을 치고, 머리칼에 군사를 내려 보내고, 허리에 복병을 숨기더니 급기야 손등까지 치고 내려온다. 파죽지세다.
적의 수중에 들어간 점령지, 그 피폐한 모습을 망연자실 바라본다. 아, 잔인하기도 해라! 하지만, 그렇지만… 나도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지 않은가. 전열을 정비하고, 최후의 보루를 지켜내기 위한 결사항전에 임해야 하지 않겠는가. 필요하다면 ‘피의 전투’까지도 각오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번쯤, 한번쯤은 말이다.
생계형 무엇무엇 하는 말이 있다. 생계형 노점, 생계형 맞벌이 심지어 생계형 절도라는 말까지 더러 듣는다. 이 생계형이란 말이 붙는 순간 사람들의 아량은 풍선껌처럼 훅 늘어난다. 다른 무엇이 아닌, 욕심이나 사치가 아닌, 그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를 위해 어떤 행위를 한다는 것이니, 이성이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자리를 내어 주고 만다. 그 관점에서 보면 연예인들의 행위, 숱하게 얼굴을 고치는 그들의 행위도 어느 정도 까지는 ‘생계형 얼굴공사’로 봐 주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업을 위한 얼굴공사를 연예인이 아니라 하여 못 할 법은 없지 않을까. 나아가, 죄도 아니고 불법도 아닌데 난들 하지 못할 이유는 또 어디 있으랴.
두근두근, 내 심장소리가 들린다. 따끔따끔, 눈 주위로 마취주사가 들어온다. 눈을 감은 나는 생계형 얼굴공사란 위장막 뒤에 나의 조바심과 절박함과 배짱을 교묘하게 배치한다. 그 사이, 칼과 바늘을 든 얼굴공장 기술자들이 쌍꺼풀 사이로 눈주름들을 교묘하게 숨기기 시작한다.
이 공사로 과연 얼마만큼의 시간을 벌 수 있을까.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이 까마득한 적벽 앞에서 마지막 항전을 벌인다.
세월에 지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고 어쩌면 도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어진 세월을 늘이려는 것이 아니라, 그 세월 속에서 시간가늠을 하는 것은 인간의 선택이고 지혜일 것이다. 하여 지금 나는, 이 공사 아니 이 항전을 결정한 나의 용감함에 박수를 보낸다. 주름을 잡아내는 얼굴공장 기술자, 나의 지원군인 그들에게도 갈채를 보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되돌아올 얼마간의 시간에 환영의 꽃다발 하나 푸르게 준비한다.
2017 에세이문학 여름호 '에세이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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